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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스위스. 이태리 여행기

원세계 2013. 5. 26. 22:01

프랑스. 스위스. 이태리 여행기

□ 여행일정

○ 4. 21. 13:25 인천공항 출발(su251편)⇛ 22:45 모스크바 세레매체보(sheremetyevo) 공항 도착(9시간 20분)⇛ 00:05 모스크바 환승 출발

○ 4. 22. 03:30(현지시간 7시간 늦은 20:30) 프랑스 드골공항 도착)⇛ 05:00 comport 호텔 도착//현지시간으로 기록.

○ 4. 22. 09:00. 개선문⇛ 콩코드 광장⇛ 10:50 사이오 궁⇛ 13:20 몽마르뜨 언덕⇛ 14:50 루브루 박물관)⇛ 16:40 쁘랭땅 백화점⇛ 19:00 에펠탑⇛ 21:00 세뉴강 유람선 관광⇛ 23:00 숙소

○ 4. 23. 05:40. 리용(lyon)역으로 출발⇛ 07:20 리용역에서 TGV 기차를 타고 출발⇛ 10:30. 뮬 후재역(mul house vill) 도착⇛ 11:00 스위스 국경도시 바젤을 지나 인터라캔(interlaken)으로 출발⇛ 13:15 인터라캔 하더쿨럼(harder kulm)에서 몽블랑 조망⇛ 15:15.하더쿨럼에서 이태리 밀라노로 출발 ⇛ 19:20. 이태리 국경도시 꼬모 통과 ⇛ 20:00 밀라노 도착, 두우모 성당 관광 후 22:00 저녁식사

○ 4. 24. 08:00. 밀라노에서 피렌체로 출발⇛ 11:50. 토스카나 주 피렌체(firenze)미켈란젤로 언덕과 두오모 성당, 시뇨리아 의회광장을 관광 후 단테생가 방문⇛ 16:20. 로마로 출발⇛ 19:40 로마옆을 지나 삐우지 호텔로

○ 4. 25. 09:35 폼배이 도착, 2,000년 전 배수비오 화산 폭발로 묻혀버린 도시 관람⇛ 11:45. pompei scavi 역에서 전차를 타고 쏘랜토로 출발⇛ 12:35 쏘랜토 역 도착⇛ 13:30 배를 타고 카프리(capri) 섬으로⇛ 14:00 카프리 섬에 도착하여 셔틀버스와 리프트를 타고 ana capri 정상으로⇛ 16:10 선착장에 도착⇛ 17:05 배를 타고 18:00 나폴리(napoli)항에 도착⇛ 20:30 숙소 도착

○ 4. 26. 07:30. 로마로 출발하여 08:45 도착⇛ 09:00 바티칸 박물관과 배드로 성당 관광⇛ 14:30 밴츠투어(빤떼온→ 뜨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베네치아 광장→ 아밴티노 언덕→ 진실의 입→ 캄피돌리오 언덕→ 몰타 수도원→ 콜롯세움 경기장⇛ 18:40 상점 쑈핑과 식사⇛ 22:50 숙소로

○ 4. 27. 08:00 로마 fiumicinodp 있는 leonardo davinci 공항 도착⇛ 13:00 러시아 아에로플로트 su 2403편을 타고 이륙⇛ 16:20 모스크바(moscow) 세래매체보(sheremetyevo) 공항 도착(3시간 20분) ⇛ 19:40 su 250 편으로 환승하여 출발(모스크바 시간: 21:40, 한국시간: 4. 28. 02:40)

○ 4. 28. 11:00 인천공항 도착(8시간 20분 소요)⇛ 16:30 광주 고속터미날 도착(3시간 50분 소요)

□ 여행의 개관

○ 우리 일행은 신혼부부 4팀과 함께 전국에서 모인 33명이었고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기위한 스케줄 때문에 약간 피곤하였으나 새로운 환경, 역사, 문화를 관광하는 것은 호기심이 많은 나에게 정말 의미 있는 일이었다. 처음 인천에서 모스크바까지 9시간 20분. 환승 후 프랑스까지 3시간 30분 도합 12시간 50분을, 돌아 올 때는 로마에서 모스크바까지 3시간 20분. 환승 후 인천까지 8시간 20분 도합 11시간 40분 동안 좁은 비행기 좌석에서 잠을 자고 깨기를 여러 번, 다리를 꼬았다 비틀었다 몸살을 하였고, 시차는 모스크마와 5시간, 프랑스와는 7시간 차이가 있어 한국 시간으로 04:30분이 되어서야 프랑스의 해가 졌다.(갈 때와 돌아올 때 시간 차이가 나는 것은 갈 때는 바람을 안고 가고 돌아 올 때는 바람을 등지고 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 비행기 항로는 인천에서 서해 공해상으로 나가 중국 베이징(beijing)과 몽골 울란바로르(ulan bator) 옆을 지나 이르쿠츠크(irkutsk) 호수, 우랄산맥을 넘어 크라스노자르스크(krasnojarsk) 상공을 지나 모스크바에 도착하였고 거기서 다시 폴란드, 독일, 벨기에 영공을 거쳐 프랑스에 도착하였고 돌아 올 때는 이태리에서 체코, 유고, 헝가리, 오스트리아, 폴란드를 거쳐 모스크바 영공을 이용하였는데 한국에서 유럽에 가는 최단거리 코스라고 한다. 특히 중국과 몽골 국경 근처에서 소련 국경까지는 험준한 산과 사막이 있어 나무와 풀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러시아에 들어서는 눈과 얼음으로 뒤 덮인 동토로 보였으나 모스크바에 가까워질수록 나무와 호수 풀들이 많아 사람이 살아가기에 적당하게 보였다.

○ 날씨는 여행 내내 좋았으나 로마에서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비가 조금 왔으나 황토비가 와서 비를 맞으면 안 될 것 같았고, 기온은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비슷하였으며 스위스는 약간 낮은 편이고 이태리는 위도는 우리나라와 같지만 지중해성 기후로 3~4℃ 높은 편이었으며 호텔방은 난방이 되지 않아 따뜻한 잠옷이 필요하였다.

○ 화폐는 유로화를 사용하는데 1유로에 우리 돈 1,450원 정도였으며 달러는 사용하는 곳이 없었고, 차량은 운전석이 왼쪽에 있는 미국식이었으며 고속도로는 있으나 고속버스 시스템은 없고 오토바이 통행은 가능하다고 한다. 문자는 영어에서 파생된 프랑스어, 이태리어, 독일어 등을 사용하는데 발음 등이 약간씩 다르지만 기본은 거의 같은 것 같았다. 건축형식은 약 700년~ 2,000년 전에 돌기둥과 돌벽돌을 이용한 돔 형식의 아치공법으로 지붕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세워진 성벽, 성당, 왕궁, 개선문, 콜로세움, 귀족들의 저택건물과 7층 높이의 주상복합건물이었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전쟁으로 인한 식민지 건설, 카톨릭의 권위 등으로 교황, 전제군주, 왕, 귀족들이 막강한 부와 권력의 힘으로 노예들을 이용함으로써 가능하였다고 보여 진다. 또한 도시는 우리와 같은 바둑판식이 아니고 광장과 개선문 등을 중심으로 8방 또는 12방향으로 각기 도로가 건설된 방사선의 별모양 형태를 가지고 있었고 도시의 중앙에는 반드시 강이 흐르고 있었다.

○ 유럽도 중국인이 점령하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요즘 유럽의 여행객행객은 중국인이 가장 많으며 바티칸 박물관과 배드로 성당에 입장할 때는 약 2시간을 줄을 설 정도로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해설사의 말이 들리지 않아 무전기를 귀에 꽂고 들어야 했다.

□ 프랑스에서

○ 드골공항에 내렸을 때 너무 피곤해서 자세한 것은 관찰하지 못했으나 굉장히 큰 국제공항이라는 것을 느꼈고 comport 호텔의 숙소는 커피포트와 헤어드라이 기가 비치되어 있을 정도로 좋았으며 식사는 간소하게 빵과 주스, 커피로 해결하므로 음식물 찌꺼기가 거의 없었다. 루브르 박물관 경비들이 소매치기가 많아 근무가 어렵다고 파업을 할 정도로 치안상태는 썩 좋은 편은 아닌 것 같았으며 이곳의 건축물은 우리의 1층을 0층으로 표기하고 있었다.

○ 프랑스는 과거 식민지 보유측면에서 영국 다음으로 강한 나라이며 현재도 5개의 해외 자치주와 4개의 해외영토를 가지고 6,000만명이 사는 나라로 EU(유럽연합)를 주도하며, 연평균 기온은 15~20℃로 농사짓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또한 프랑스인들은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지 못하는 단순한 의식구조를 가진 사회주의 형태의 정치조직을 가지고 있어 세금을 수입의 50%→70%를 납부하는 법안이 제정되자 부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으며 신호등은 우리나라같이 도로 중앙에 있는 것이 아니고 도로의 양측에 낮은 높이로 설치되어 있어 식별이 용이 하도록 되어 있으며 전기줄이나 간판이 전혀 없어 깨끗한 거리를 갖고 있는 수도 파리는 세느강(Seine river)을 중심으로 몽마르뜨르 언덕 등 7개의 언덕이 있는 계란형 도시로 우리나라 유학생 13,000명 등 220만명이 살아가는 예술의 도시이다.

-. 개선문 관광

드골 에투알 광장의 중앙에 서 있는 개선문은 나폴레옹 시대 전쟁터에서 승리해 돌아오는 황제 또는 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문으로 1806년 30년에 걸쳐 세워졌으며 높이 49.54m, 폭 44.82m, 270개 계단으로 구성되어 우리나라의 현충원 역할을 한다고 한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파리 시가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12개의 장군 이름을 딴 대로가 방사선형으로 뻗어 있다.

-. 사이오(chaillot) 궁

인권광장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1937년 세계박람회를 위하여 이 궁을 건축하였는데 현재 여러 박물관을 수용하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에펠탑의 전경과 그 뒤 프랑스 육군사관학교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최근 관중 2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이의 강남스타일이 공연되었다고 한다.

-. 엥발리드(invalides) 호텔

엥발리드 광장에 세워진 돔형의 이 건물은 금으로 원형 천장이 도금되어 있으며 원래 루이 14세 때 전쟁 병상자들을 치료하는 병원이었으나 오늘날 나폴레옹의 묘소와 군대 박물관으로 쓰인다고 한다.

-. 콩코드(concorde) 광장. 궁전

콩코드란 말은 화합이란 뜻으로 광장 중앙에 이집트에서 선물로 받은 23m 높이의 오벨리스크가 있으며 프랑스 혁명 당시에는 브르조아를 처형하는 단두대가 설치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되었다고 한다.

-. 몽마르뜨 언덕의 성심성당

130m 높이의 이 언덕은 마네, 모네, 고호, 피카소 등의 유명 화가들이 무명시절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며 생활한 빈민촌으로써 현재는 다른 나라에서 들어와 사는 집시족들이 많아 야바위와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언덕 정상에는 정면 우측에 애국심을 상징하는 잔다르크 형상과 순교를 상징하는 마르뜨상이 부조되어 있는 성심성당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그 뒤편으로는 그림을 그려 파는 이름 없는 화가들이 많이 있었다.

-. 루브르(louvre) 박물관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이곳은 225개의 방에 약 30만점의 예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그림. 밀로의 비너스와 시모트라케의 니케 조각상이 유명하다. 이곳은 원래 전쟁의 요새였는데 후에 프랑스왕의 주거지로 사용되다가 1793년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가이드의 해설에 의하면 나폴레옹이 말을 타고 알프스를 넘는 그림은 조작된 것으로 실제로는 나폴레옹은 153cm의 단신으로 무서워서 말을 못타고 멍청하여 시키는 대로 잘 하는 나귀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으며 위암의 통증이 있어 항상 상의 단추를 풀고 오른손을 배에 넣고 잡고 있었다고 한다.

-. 프랭땅 백화점

프랑스는 국가는 부자이나 국민은 가난하여 검소한 편으로 고기값은 싼 편이나 소주 1병 15유로 약 22,000원, 조그마한 디오르 향수 190유로, 전기세, 물세, 가스세 등이 비싼 편이고 면세처리는 맨 마지막 날 여러 가지 증명서를 만들어 제출해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며 모스크바 공항상점에서 비교해 보니 프랑스가 훨씬 비싼 편이었다.

-. 에펠탑(la tour eiffel)

프랑스 혁명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축한 이 탑은 철의 여인으로 별칭 되기도 하는데 총 3개층(1층 전망대 51m, 2층 전망대 115m, 3층 전망대 274m)으로 높이 324m, 무게 10,000톤, 계단 1,789개를 철재 리뱃 250만개를 조립하여 건축하였는데 낮에는 검은 철재로 보이나 밤에 조명이 들어오면 황금색으로 휘황찬란하게 보였다. 또한 이 탑의 전망대에서 보면 세느강을 중심으로 한 아름다운 고도의 도시인 파리 시내가 모두 조망되었다. 특이한 점은 철 구조물이기 때문에 여름철 더울 때는 길이가 17cm 늘어난다고 한다.

-. 세느(seine)강 유람선

이 강은 강폭은 그리 크지 않으나 수심이 깊어 약간 큰 배도 자유스럽게 통행할 수 있어서 우리 일행은 유람선을 타고 약 1시간 10분 동안 관광을 하였다. 배를 타고 올라가면서 사요궁, 에펠탑, 개선문, 엥발리드 호텔, 콩코드 궁, 루브르 박물관, 1606년 시테섬과 연결된 가장 오래된 퐁느푸 다리, 노트르담 성당의 야경을 볼 수 있었으며 그 중 에펠탑의 야경은 장관이었다. 세느강 주변의 문화유적들은 고대 로마병사 등 이민족들이 강을 따라 공격할 때 이를 방어하기 위해 만든 요새였었는데 이것이 평화시대에 와서는 훌륭한 문화유적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리용(lyon)역

경기장의 좌석 이동이 가능하다는 화성형태의 월드컵 경기장을 지나 리용역에 도착하여 때제배(TGV)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멀쩡하게 생긴 50세 정도의 남자 짚시가 우리 일행의 짐을 훔쳐가다 들켜 찾아 왔는데 별 죄의식도 없이 쏘리하고 다른 곳으로 유유히 사라지는걸 보고 다시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조금 기다리다 49.80eur를 주고 약 3시간 정도 걸리는 뮬 후재역을 향하여 낮은 형태의 2층 기차 TGV를 타고 산이 거의 없는 파랗고 넓은 들판을 보면서 달려갔다. 우리나라의 ktx 기차는 tgv 모델을 채택하였는데 평원에서 운행되는 tgv는 우리나라 환경과 잘 맞지 않은 면이 있으나 출발이 부드럽고 소음이 거의 없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 뮬 후재역(Mul house ville)

프랑스 국경도시이자 은퇴한 부농들이 산다는 뮬 후재역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튜울립이 피어있는 들판을 지나 스위스 국경도시 바젤(Basel)에서 입국세금을 내고 라인강을 건너 스위스 인터라켄을 향하였다.

※간단한 프랑스 언어

“꼬망 딸레 부(comment allez-vous)”=안녕하십니까?

“멕시 보꾸(merci beaucoup)”=대단히 감사합니다.

“꽁비앙(combien)”=얼마입니까?

□ 스위스에서

○ 스위스(CH)는 유로존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로써 수도는 배른이다. 스위스는 양질의 철강석이 많이 난다는 유라시아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끼고, 한반도의 2.5배 면적과 750만명의 인구를 가진 중립국으로 자연 호수가 70여개 있어 관광산업과 시계산업, 비밀 금융산업 등이 발달한 나라이다. 특히 유럽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몽블랑(4,807m)과 융플라우(4,158m)에서는 몇 천년 전에 만들어진빙하와 설산을 볼 수 있고 스키 등을 즐길 수도 있으며 휴양도 할 수 있다. 또한 특이한 모양의 가로수와 알프스 소년 하이디 소년이 금방이라도 나타 날 듯한 초원과 산중의 주택 등은 그림에서 보았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주 감동적이었고 나도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또한 스위스의 민족은 고대 켈트족, 로만 및 게르만족의 후예들로 독일인과 프랑스인, 이탈리아계 종족에 속하므로 언어도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고대 로마어 등 4종을 공식언어로 사용 중이고 왕실의 근위대로 근무하는 용병들은 죽음을 담보로 돈 가치는 반드시 한다는 충성심이 있어 좋은 평을 받고 있다고 한다.

○ 독일 히틀러가 이태리를 정복하기 위해 스위스에게 길을 달라고 하니 모든 도로와 교량을 파괴하여 통행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강경하게 반대하자 할 수 없이 영세중립국을 인정하여 주었고, 이때 독일의 핍박을 받던 유태인 부자들이 모든 재산을 가지고 스위스로 망명을 하였으며 독일의 고위 군인장교들은 부정하게 축재한 재산을 스위스 은행에 비밀리에 예금을 해 두었는데 독일이 패망하자 모두 떼어먹어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 인터라켄(interlaken)

우리 일행은 주변의 경관을 더 잘 보기 위하여 빨간 휘니큘러를 타고 1,320m의 하더쿨럼(harder kulm)으로 올라가 눈앞에 펼쳐진 빙하의 툰 호수와 브리엔츠 호수 사이에 있는 인터라켄을 보니 정말 동화속에 나오는 그림 같은 설산 융플라우 전경과 인터라겐, 툰 호수, 브리엔츠 호수 등을 감상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싸간 도시락을 먹고 내려왔다. 이곳의 집값은 호수 옆이나 산위 초원에 지어진 집이 비싼 편인데 이는 그곳까지 도로, 전기, 상수도 시설이 아주 잘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알프스 산맥을 넘어

우리는 버스를 타고 이탈리아 밀라노로 오기 위해 수많은 터널과 호수를 지나 알프스 산맥을 넘어 오는데 도로가 일방통행만 가능할 정도로 좁은 곳을 지나 지그재그 식으로 한참 올라갔다가 내려오기를 여러 번 반복하였으며 길 옆 산속에는 양수발전소와 높은 산의 눈이 녹으며 내려오는 폭포가 여러 곳 보였고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국경지역에 있는 누가로 호수를 지나 이탈리아 국경도시인 꼬모를 통과하였다.

□ 이탈리아(ltaly)

○ 이탈리아는 유럽에서 지중해를 향해 1,200km를 뻗어 시칠리아 섬과 사르데냐 섬을 포함하는 장화모양의 반도국가로써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이며, 반도 중앙에는 아펜니노 산맥이 있고 인구는6,000만명 정도이며 면적은 한반도의 1.4배 정도이다. 이탈리아는 화려했던 로마시대의 역사와 미켈란젤로, 나파엘로, 단테, 보카치오, 마키야벨리, 네오나르도다빈치 등 훌륭한 예술가들이 많은 것 같이 패션예술 등이 발달했으며 북부지역은 대륙성 기후로 우리와 비슷하고 경제가 발달을 했으며 남부지역은 해양성 기후로 우리보다 더워 한 여름 기온이 50℃를 올라간 적이 있으나 습기가 없어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한 느낌이 있어 우산소나무라고 하는 잣나무가 가로수를 이루고 있고, 경제는 북부보다 떨어져 있어 지역감정이 있다고 한다. 또한 이탈리아어는 우리의 세종대왕과 같은 단테가 이탈리아어로 신곡을 써 체계화 했으며 이 글은 알파벳의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되므로 따로 발음기호 같은 것이 필요 없고 거의 모음으로 끝나는 말이어서 성악이 발달하였으며 R 발음을 잘 굴려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고속도로에서의 high pass로는 tele pass라고 하고 산타루치아, 오 솔로미오라는 가곡과 깐소네라는 나폴리 민요, 핏자 등이 유명하다고 한다.

○ 밀라노(milano)

기원전 600년 시저가 설계한 계획도시로 인구 250만명이 살고 있는 이탈리아 제 2의 경제 상업도시로 패션의 도시이자 교통 요충지다. 네오나르도 다빈치의 고향으로 그 옛날 로마가 프랑스를 정복하기 위해 세운 도시이나 나폴레옹의 지배를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의 두우모 성당은 1,368년부터 450년간 건축된 건물로 높이가 158m이며 3,159개의 조각상이 있는 화려하고 장엄한 모습이었으며 실크 섬유산업이 발달했다고 한다.

○ 피렌체(Firenze)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에 있는 인구 37만인 이 도시는 우리나라의 고도 경주와 비슷하며 1,321년 이탈리아를 통일한 후 수도였다 하며, 시가지에는 부활을 상징한다는 싸이프러스 나무가 울타리를 하고 있는 묘지들이 보였고,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가니 광장 중앙에는 다비드 상 복제품이 있었고 피렌체의 시가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는데 시 중앙에 아르노 강이 흐르고 있었고 붉은 돌 벽돌집과 거대한 두오모 성당이 보였다. 우리는 성벽을 통과하는 문을 통하여 시내로 들어가 매디치아 귀족의 권력으로 브르젤스키가 완공하였고 1292년에 착공하여 1446년에 완성되었으며 3만 여명을 수용할 수 있다는 높이 106m, 계단이 463개인 산타마리아 두오모 성당을 보았는데 약 700년 전에 3.5톤이나 나가는 돌을 쌓아 올려 이러한 거대한 돔형 석조건물을 지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성당 안 천장에는 미켈란젤로의 불후의 명작인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고 제단 왼쪽에는 그의 미완성 대작인 ‘피에타’가 있었다. 그리고 성당 옆에는 물의 여신 포세이돈 분수와 다비드상 등이 있는 시뇨리아 광장이 있었고 광장 한쪽에 계단이 414개이며 높이 83m인 지오토 종탑이 있었는데 성경의 천지창조 그림이 청동문에 조각되어 있었다. 또한 이 도시는 신곡을 쓴 단테의 출생지로써 생가가 보존되어 있었으며 1321년 세계 최초로 썬글라스와 가죽신발을 만들었다고 한다.

○ 피우지

우리는 아펜니노 산맥을 넘어 우리나라의 경부고속도로의 모델이 되었다는 1번 고속도로를 따라 로마에서 남쪽으로 약 100km 내려가 약수로 유명하며 휴양도시인 피우지의 boschetto 호텔로 향하면서 이탈리아는 밀, 옥수수, 해바라기가 3대 농작물이고 포도와 올리브, 유채와 비슷한 브로클랫드를 많이 재배하며 음식에 설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약 700년 전 흑사병을 피해 산의 7~9부 능선 또는 정상에 마을들이 형성되었으며 이탈리아의 대리석은 응회암으로 채석 당시에는 돌이 물러 조각하기가 아주 좋으나 시간이 지나 공기와 접촉하게 되면 단단하게 굳을 뿐만 아니라 석회가 접착제 역할을 하여 건축에도 아주 좋다는 설명과 함께 문맹율이 높아 더빙산업이 발달하였고 지중해성 기후로 겨울이 우기이며 지중해의 물이 따뜻하여 생선회가 맛이 없다는 설명을 들으며 간단한 이탈리아 언어를 몇 마디 배웠다.

※ 간단한 이탈리아어

“챠오(ciao)”=안녕하세요. “스쿠지(scusi)”=미안합니다.

“그라지에 밀레(grazie mille)”=대단히 고맙습니다.

○ 폼패이(Pompei)

우리는 나폴리 항구 옆을 지나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79. 8. 24. 14:00경 약 8km 떨어진 1,226m 높이의 배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화산재에 의해 17만평의 도시가 약 8m 깊이로 묻혀 약 1,500여명이 사망하였다는 폼패이에 도착하여 시가지를 둘러보았다. 화산 폭발 후 비가 내려 화산재의 석회석 성분에 의해 굳어버린 도시를 한 농부가 발견하여 발굴되었다고 한다. 폼패이의 입구는 지금은 도로가 나 있지만 그 당시 해변의 항구인 이곳에 배가 정박하고 선원들이 내려 목욕을 하고 성욕을 해소하는 등 환락의 도시로 번성하였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돌로 도로는 포장이 되어 있었는데 야간에 조명을 위해 하얀 들을 박아 놓았고 납으로 만든 수도관과 하수도가 정비되어 있었으며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어 있었다. 또한 교차로에는 28개의 석조 우물로 이정표 역할을 하게 하였으며 광장에는 개선문과 관청, 아폴로 신전 등이 있었는데 아폴로 신전의 해시계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상가에는 그 옛날 삿다를 설치한 흔적이 있었고 뱀표시를 한 약국과 계량소, 택배회사, 까패, 책방, 우체국, 경찰서, 식당 등이 있었는데 모두 간판을 설치한 흔적이 있었고 남자들이 사용하는 목욕탕에는 오늘날과 같은 탈의실, 습식사우나, 냉탕, 온탕 등이 설치되어 있었고 개인주택을 보니 빗물을 받아 사용한 흔적과 당시 사용하던 그릇, 당시 고통스럽게 사망한 주민들의 미이라 시신들이 있었으며 매춘장소인 사창가에는 외국의 선원들과 말이 통하지 않으니까 성행위를 하는 그림을 붙여 놓고 거래를 하였는데 당시 화대는 포도주 2잔정도 이었을 것이며 화산이 2,000년 주기로 폭발을 하니 머지않아 재 폭발이 있을 것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 쏘랜토

우리는 Pompei Scavi 역에서 약 20분간 전차를 타고 주변을 감상하며 쏘랜토역에서 내리니 여름날씨 같은 느낌이 들었으며 이 도시는 인구 17,000여명이 살고 있는데 ‘돌아오라 쏘랜토로’ 라는 영화에 의해 유명해졌다고 하는 설명을 들으며 시내 중심가를 걸어 카프리 섬으로 가기위해 선착장으로 가는 도중 상가가 있어 가죽가방을 샀는데 유명 메이커는 아니지만 매우 싼값으로 팔고 있어 실용적이었다.

○ 카프리(Capri) 섬

약 30분간 배를 타고 카프리 섬으로 들어가 바다에서 벌써 수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조그만 셔틀버스를 타고 아찔한 절벽 길을 따라 Anacapli로 올라가서 다시 리프트카를 타고 해발 589m의 산 정상으로 올라가 나폴리, 배수비오 화산, 폼패이, 쏘랜토를 감상 후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먹고 내려와 나폴리로 나가기 위해 선착장에 내려와 배를 기다리면서 해변에서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맑은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간식을 먹으며 쉬었다.

○ 나폴리(Napoli)

약 1시간 정도 배를 타고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 나폴리로 나오는데 먼 바다의 섬들과 나포리, 폼배이, 쏘랜토, 카프리 섬으로 둘러싸인 항구는 거의 파도가 없었고, 해변에서 산 정상까지 집들이 있어 야간에 불을 키게 되면 정말 아름다운 항구가 될 것 같았다. 나폴리 항에 도착하니 루어보 성과 까롤로스 왕국, 산 정상의 수도원 등이 눈길을 끌었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이태리에서 세 번째로 큰 나폴리 시내를 통과하여 숙소로 돌아오며 노래를 잘 불러 선원들을 바다에 투신하게 하였다는 빠르테로페 라는 물을 싫어하는 인어(사실은 새라는)의 이야기와 버스 기사가 ‘한국 남자들은 빨리 죽느냐“라는 질문에 왜 그러느냐고 하자 관광객이 거의 여자들이어서 그렇게 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 한바탕 웃었고 숙소로 돌아오며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 로마

약 3,000년의 역사를 지닌 로마는 테베레 강의 하류에 위치하고 있고 인구 630만명이 살고 있는 이탈리아의 수도이다. 로마는 일찍이 고대세계의 중심지이자 유럽문명의 발상지로써 서구사회를 지배하였으나 중세 말기부터 힘을 잃어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한 적이 있는데 이때 로마의 개선문을 보고 프랑스에도 3개의 개선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로마는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선 모양의 도로망을 가지고 있으나 고속버스 시스템은 없으며 뭇솔리니에 의해 로마제국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명분아래 철도교통이 발달하였다고 하고 현재는 재정난으로 시내 입장료를 받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전 세계 카톨릭 신앙의 중심인 바티칸 교황청이 정부와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하며 현재는 266대 프란체스카 교황이라고 한다.

-. 바티칸 박물관과 배드로 성당

약 2시간 정도의 줄을 서서 입장료 16유로, 수신기 2유로를 내고 박물관에 들어갔는데 1일 100만 명이 관람을 한다고 하며 14,000여개의 방에 역대 교황들이 수집한 역사적인 유물과 조각, 그림, 지도 등이 있는데 그 중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독신으로 살다 간 미켈란젤로의 4년 5개월에 걸친 천지창조 그림과 최후의 심판, 사람을 따라 눈동자가 돌아가는 예수님의 그림, 미켈란젤로의 서명이 있는 삐에따 조각상 등이 눈길을 끌었다.

-. 빤떼온 신전

약 1,900년 전 건축된 이 건물은 돔 형식의 통 대리석으로 건축되었는데 벽면은 5m 90cm, 천장은 1m 50cm이고 대리석의 무게 때문에 지붕을 완전하게 막지 못하고 지름 8m의 원형 구멍을 남겨두었는데 이것이 해의 방향에 따라 그림자에 의해 시계역할을 하였으며 내부에는 여러 개의 조각상과 기도하는 곳, 라파엘로의 관이 있었다.

-. 트레비 분수

트레비란 3거리란 뜻으로 교황의 명에 의해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는데 한 가운데는 대양의 신 오체아누스 상이 있고 양옆은 풍요와 건강을 상징한다. 포세이돈 트레비 분수는 처녀의 샘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전쟁에서 돌아온 지친 병사에게 처녀가 물이 있는 곳을 알려주어 그 곳을 파니 샘물이 나왔다는 전설에 의한 것이며 이곳은 등을 돌리고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 너머로 동전을 던져 한 개를 넣으면 다시 로마에 올 수 있고 두 개를 넣으면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개를 넣으면 이혼을 한다는 전설로 유명하다고 한다.

-. 스페인 광장과 베네치아 광장

우리는 한국의 명동과 같다는 번화가 스페인 광장을 경유하여 베네치아 광장으로 오니 뭇솔리니가 건설하였다는 타자기 건물이 있었는데 지붕에는 천사가 마차를 탄 조각물이 있었다. 그런데 이 건물이 옛날의 거대한 로마 유적을 가리고 있다고 하여 로마인들이 싫어한다고 했다.

-. 아벤티노 언덕과 진실의 입

이곳에서 맞은편의 빨란티노 언덕에 있으며 허물어져 가는 옛날 왕궁터 건물과 바로 밑에 있는 벤허 영화에서 대전차 경기장으로 촬영하였다는 장소를 살펴보고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진실의 입이라고 소개된 하수구를 살펴보았다.

-. 캄피돌리오 언덕의 광장

이곳은 고대 로마인들이 가장 신성시하던 주피터 신전이 세워졌던 곳으로 미켈란젤로가 설계하였다는 광장이 있고 그 양옆에 캄피돌리오 박물관과 시청사로 사용하는 콘세르바토리 궁전이 있는데 부채꼴 형태의 건물로 착시현상을 일으켜 보는 방향에 따라 넓게 또는 좁게 보이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걸어서 밑으로 내려오니 기원 후 367년경에 새워졌다는 델리데이콘센타 건물의 주량 현관이 보였고 그 바로 밑에는 2개의 개선문과 여러 신전의 기둥들이 보였으며 저 멀리 콜로세움도 보였다.

-. 콜로세움

로마의 상징적인 명소인 이곳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명령으로 72년에 시작해 80년에 완성된 원형 경기장으로써 정식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극장이라고 한다. 이 극장은 직경이 188~155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은 높이 48m로 4층이며(1층: 왕족, 2층: 귀족, 3층: 군인, 4층: 평민들이 사용) 관람석은 계단식 방사선으로 5~8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이 건물의 외벽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은 최초 외벽을 화려하게 장식할 때 이를 붙이기 위해 구멍을 뚫고 납을 집어넣어 부착물과 붙도록 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며 뭇솔리니가 전쟁 물자를 구하기 위해 장식물을 뜯어 가고 중세에는 교회나 큰 건물을 짓기 위해 대리석을 뜯어가 훼손되었다고 한다. 이 경기장은 영화 밴허에서 소개되었듯이 검투사들의 격투장으로, 굶주린 맹수와 노예들의 사투, 모의해전,.맹수들의 싸움 등 끊임없이 피를 보여주며 국민들을 흥분시켜 정치적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약 300년 동안 시행되다가 405년 오노리우스 황제의 폐지명령으로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막을 내렸다고 한다.

□ 맺는 말씀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기위해 강행군을 한 것 같다. 프랑스 파리에서의 문화, 스위스의 아름다운 경관, 이탈리아의 역사적 유물 어느 하나 새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번 여행 내내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계셨지만 힘들다거나 불평을 하는 것을 볼 수 없었던 것은 여행을 좋아하고 자기가 원한 일이었기 때문이리라. 난 금년 여름에 차마고도의 일부인 라샤를 가 볼 생각이고 겨울에는 잉카문명을 보았으면 하지만 계획대로 잘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1년에 반드시 2회 정도는 여행을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번에 여행을 하게 해준 참존 여행사 관계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앞으로도 여행에 관한 정보를 많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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