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상사화

상사화/ 이해인
아직도
한번도 당신을
직접 뵙진 못했군요
기다림이 얼마나
가슴아픈 일인가를
기다려 보지 못한 이들은 잘 모릅니다
좋아 하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서로 어긋나는 아타까움을
어긋나 보지 않은 이들은 잘 모릅니다.
날마다 그리움으로 길어진 꽃술
내 분홍 빛 애틋한 사랑은 언제까지 홀로일까요?
오랜세월 침묵 속에서
나는 당신에게 말하는 법을 배우고
어둠 속에서 위로 없이도 신뢰하는 법을 익혀 왔습니다.
죽어서라도 꼭 당신을 만나야지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함을
오늘은 어제보다 더욱 믿으니까요.
상사화 이야기
옛날에 한 수도자가 세속의 여인을 사랑했다.
수도자는 날마다 여인을 그리워했지만 신분이 신분인지라 여인을 만날 수는 없었다.
수도자는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담은 꽃을 앞마당에 심었다.
잎이 다 진 다음에 꽃이 피고,
꽃이 진 다음에 잎이 나는 상사화. 꽃과 잎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운명이 수도자의 심정을
대변하기에 충분했으리라.
봄에 선명한 녹색 잎이 구근의 중앙을 중심으로 양쪽에 마주 붙어 나지만 꽃을 보지 못하고
6월경에 말라 버린다.
꽃은 잎이 말라 없어진 다음 7~8월에 꽃대를 내어 피운다.
이처럼 상사화는 마치 사랑의 숨바꼭질을 하는 연인마냥, 잎이 나오면 꽃이 지고
꽃대가 나오면 잎이 말라 버리는,
서로를 그리워 하지만 만나지 못하는 슬픈 인연을 보는 듯하다.